유시민 서울대 프락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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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서울대 프락치 사건


2020. 10. 4.


유시민의 흑역사이면서, 동시에 그의 항소이유서가 화제가 되어 일약 유명세에 오르게 만들어준 사건. 사건명이 역사적으로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굳어졌지만, 당시 프락치로 몰렸던 당사자 전기동 씨의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중재 요청 등에 의해 일부 언론에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폭행 고문조작' 사건으로 변경해 부르기도 한다.

사건은 그가 복학한 후인 1984년 9월 17일 있었던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창립총회(회장 경제 4학년 유시민)부터 시작된다. 총회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한 학생이 자신이 '78학번 공법학과 출신으로 군에 강제징집되어 복학한 임신현'이라고 소개했는데, 당시 워낙 군에서 녹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프락치를 많이 파견할 때라 학생들이 수상히 여겨 심문 끝에 "나는 가짜 학생이다. 복협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아보러 왔다."라는 자백을 얻어낸 것이다. 그 외에도 총 4명이 프락치로 몰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열흘 넘게 감금하였고 안기부 스타일의 고문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방식은 구타와 함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코에 주전자 물을 들이부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운동권 학생들이 평소 기관에 끌려갈 때마다 당하던 고문을 자신들이 행한 것이고,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사람들이 독재정권과 똑같은 짓을 저지른 것이다.

손현구 씨의 경우, 당시 서울대 학생들에게 열흘 넘게 고문을 당하여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프락치였다고 자백하였다. 하지만 다른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가짜 대학생' 노릇을 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프락치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전기동 씨로 앰뷸런스에 실려서 관악병원 응급실로 갈 정도로 중상이었다.

이것이 서울시 경찰에 의해 '학생들이 임군을 감금, 기관원을 자백케하고 철야심문하며 구타했다."라는 내용으로 발표되었고, 재판 결과 유시민 등 3인은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다.

한편 항소이유서는 원래 변호사가 쓰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하던 이돈명 변호사가 피고인 유시민에게 직접 작성을 권유하여 쓰게 된 것이라고 한다. 황호택 기자가 그 항소이유서를 작은 박스 기사로 신문에다가 기재했는데, 이후 독자들의 격려 전화가 많이 왔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교는 1992년에 졸업하였고, 이후 독일로 건너가 마인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석사 전공으로는 보건경제학을 택했고, 석사 논문은 「국제교역의 확대가 국내 임금격차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였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본인의 항소이유서 중에서. 자신이 민간인 감금과 조사에 찬동했다고 시인하는 부분이다.


한참 후인 2006년,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된다고 하자 전기동씨는 "자신을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매우 좋아하였다.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을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당시 전기동의 주장은 "자신은 (가짜 서울대생이었지) 프락치가 아님에도 여러 사람이 자신에게 폭행을 가했고, 유시민은 폭행이 일어날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가 끝나고 나타나는 등 교묘하게 뒤에서 지시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자신을 보고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폭행 가담자들에게 자신은 돌려보내라 지시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폭행을 뒤에서 조종한 자가 유시민이 확실하다" 는 것이었다. 다만 직접 폭행을 가한 사람은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재철이라고 밝혀버리면서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 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을 돌려보내며 어영부영 끝나버렸고, 보수 언론의 관심이 급속히 냉각되었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주장과 전기동의 주장이 서로 일맥상통한다. 유시민도 자신이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감금과 조사에 가담하였고, 폭력행위를 알면서도 방치했다고 시인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복학생 협의회에서 전기동 씨 등 가짜 대학생 4명을 적발하였다.

2. 그리고 손현구 씨는 열흘이 넘는 고문을 견디지 못 하고 프락치라고 자백했다. 다만 전기동 씨를 포함한 3명의 경우 '가짜 대학생'은 맞지만, 프락치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3. 이 과정에서 심재철 등이 전기동 씨에게 폭행과 고문을 자행했고, 유시민은 직접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폭행과 고문이 있음을 알면서도 이를 막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가들이 옳은 가치를 위해 투쟁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민간인에 대한 납치, 감금, 폭행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또한 17대 총선의 홍보책자에서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화 유공자'가 되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다가 검찰에 기소되었다. 판결 자체는 무죄가 났으나, 이는 '허위사실을 기재하였지만 본인은 허위라고 생각을 안 했으므로'라는 이유로 무죄가 뜬 것이다. 이 허위사실 기재로 인해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