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신작 물의길의 볼거리는 기대를 확실히 넘어서지만 이미 전작에서 충격에 가까운 영상미를 보여준 것에 비하면 그 느낌이 약하다. 1편 3D 상영시 저도 모르게 손을 뻗는 관객이 무수히 나왔는데 2편은 그만한 임팩트를 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1편 당시에 비해 관객들이 이미 그런 스케일 큰 CG에 익숙해진 세상이고 1편을 봤던 사람들이 기대한 건 당시 수준을 넘는 놀라움인데, 떠있는 암석이나 반짝이는 식물, 외계 동물들과 같은 요소로 충격을 줬던 1편을 이미 본 관객들이다보니 2편은 해양 부족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라는 반응이다.
서사적인 면에서는 전편과 비교해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3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스토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 가능할 정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 만세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상영시간이 3시간이 넘는데도 불구하고 영화 분량의 절반은 '제이크 설리 가족의 바다 부족 적응기'로 느긋하게 진행되고, 후반에는 억지스러운 전투 후 본편에서 해결되지 않은 떡밥들을 놔둔채 끝나버린다. 의도적으로 후속작을 위해 인물과 세계관을 배치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개연성으로 가면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악역들의 동기와 매력 묘사가 1편에 비해 떨어지니 그만큼 서사에 관객이 이입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본작에서 대립 구도 내지 내세울 수 있는 악역은 쿼리치와 툴쿤 사냥꾼 믹 스코스비 정도인데, 믹은 작품 내내 실실 쪼개기만 하다가 후반부 전투에서 순식간에 퇴장해버리고 그나마 악역 진영은 쿼리치가 극을 이끌고 가고 있지만 그조차 악역의 비중이 쿼리치 한 명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그와 함께하는 아바타 분대는 몇 명 빼고는 이름도 제대로 언급되지 않고 하나 둘 허무하게 퇴장해버리면서 별다른 비중을 가지지 못한다.
전작에서도 선악 구도는 단순했지만 악의 축으로 그려지는 RDA측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이들이 묘사되는 등 다각화에 대한 노력이 눈에 띄었는데, 본작에서는 전작에서 선보인 캐릭터와 새로 등장한 캐릭터 모두 깊이가 빈약하고 비중도 사실상 제이크 일가와 쿼리치 둘이 양분했고, 캐릭터들은 그나마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이크 설리는 어째서인지 초반에 보이던 행복했던 시절의 묘사와는 달리 마을이 침공당하기 전부터 가정을 군대식으로 통솔해온 딱딱하고 엄격한 아버지로 그려졌는데, 가족은 모두 그냥 받아들였는지 이것을 해결해야 할 문제점으로 언급하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게릴라전을 이끌고 군대식으로 가정을 통솔하던 족장에서 갑자기 자기때문에 부족이 피해를 본다며 달아나 숨으려 하고, 자식이 납치되자 자기 몸을 바치려 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싸우는 모습을 보인다.
네이티리는 살아오면서 지켜왔던 신념이나 강인한 모습, 올곧게 상대를 바라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순종적인 모습이 부각되다가 후반부에서 자식을 잃고서 다시 악에 받쳐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의 아이들과 십여년간 가족처럼 함께 자라온 스파이더를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한다. 초반에 스파이더를 두고 악마의 아이라며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복선이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캐릭터가 종잡을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스파이더는 스톡홀롬 신드롬이라기에는 아예 캐릭터가 바뀐 느낌이며 그마저도 납치당한 이후 비중이 떨어지면서 겉돌아버린다. 분명 나비족의 습관과 정서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에서, 답답하게 '이러지 말아요'를 반복하며 대령에게 소극적으로 협력하는 캐릭터가 된다.
지구가 죽어가서 판도라 저항 세력을 밀어버리고 인류를 판도라로 이주한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정작 인류의 생존이 달린 상황인데 RDA 측에서 뭔가 하는 부대는 쿼리치 대령의 분대급 아바타 특임대뿐이고, RDA가 목적이 확고한 일련의 군사 작전을 통해 뚜렷히 숨통을 죄어오는 압박감이 있던 전작과 달리 이번의 인류 세력은 저항 세력을 싹 밀어버리고 행성을 통째로 점령한다더니만 공세를 준비 중이긴 한 건지 전혀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고 일말의 긴장감도 주지 않는다. 인류 측 장면은 예고 트레일러에서 보여준게 거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없다. 개척도시 브리지헤드는 2편에서 등장한 최신 로봇 기술 덕에 1년만에 전작의 헬스게이트보다 규모도 방대하고 장비와 전력도 우월하게 갖췄지만 정작 나비족을 상대로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허접하다지만 2편 기준에서 건십을 요격 가능한 무기로 무장한 수천명의 나비족을 상대로 쿼리치 대령이 동원한 병력도 달랑 휘하 특임대와 징발된 민간 포경선과 어부들 뿐이고, 전작과 같은 인류와 나비족의 명운을 건 대규모 전투 장면도 없고 제이크의 가족들만으로 RDA의 병력 중 극히 일부인 모함 한대를 파괴하고 영화가 끝나버린다. 당장 위치가 알려진 상황에서 피해를 본 RDA 병력이 제대로 공격하면 답이 없는 상황인데 대체 영화가 왜 끝나는지 의문이 들 정도.
더군다나 전투의 마지막 장면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인물의 행적들이 의아하고 전투씬의 동선도 잘려나간 듯이 부자연스럽다. 수적으로도 우세하고 방금 큰아들을 잃은 제이크와 네이티리가 어째서 대령을 남겨놓고 돌아가려고 했는지도 의문이고, 제이크는 왜 그때껏 아이들은 다 할 줄 아는 잠수를 배우지도 못했는지도 의문이지만 왜 끝을 내지 않고 굳이 긴 시간 동안 꺾는 것도 아니고 숨도 모자란데 목조르기를 시도하다 놔 주었는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후반부의 전투씬에서 제이크와 함께 온 물 부족원들은 갑자기 사라져서 더 이상 스크린에 나타나지 않는다.
설명이 부족했던 지점도 있다. 아바타가 된 쿼리치 특임대가 정글에 침투했을 때 바이퍼울프 무리와 마주치는데, 바이퍼울프들은 아바타인 쿼리치 특임대를 보고 판도라의 일원인 나비족으로 인식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1편에서 정글에 낙오된 제이크의 아바타는 바이퍼울프 떼에게 잡아먹힐 뻔했다. 굳이 변호하자면 쿼리치는 부대원들과 함께 이동 중이었고 제이크는 혼자인 상황이었다는 차이 때문일 수 있겠고, 에이와가 생물체들로 오마티카야 부족의 본거지를 보호하고 있는 묘사가 나와서 그것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이와 같은 빈약한 서사가 2년 뒤 3편을 위한 빌드업이라 생각하면 넘어갈 수도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얘기를 달리 말하자면 이번 영화는 다음 작품을 위한 복선 장치의 역할이었을 뿐, 모든 얘기는 다음 편에서 해결된다 라는 뜻인지라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드라마와 같은 연속극이 아닌데 수 년의 텀을 두고 이어지게 되는 단일 영화에서 서사가 완결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할 일을 하다 말았거나 그럴 능력이 없었다는 것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