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0월 17일 21시 50분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농춘빌딩 지하 1층에 있었던 나이트클럽 거성관에서 방화로 16명이 사망한 사건.
범인 김정수(당시 29세)는 경북 금릉군(도농통합 후 현 김천시) 부항면에서 논 7마지기 정도의 벼농사를 짓는 농부로 당시 월 수입이 200만원을 넘는 제법 잘 살던 부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돈을 잘 벌었음에도 결혼에 실패한 미혼이었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다. 그러다 김정수는 사건 2개월 전인 1991년 8월에 친구와 함께 사건이 일어난 거성관에 갔었고, 술값 6만원을 선금으로 냈지만 종업원이 술을 3만원어치만 줘서 종업원과 다툰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1년 10월 17일, 다시 친구를 만나러 대구에 왔고 고향 친구 2명과 인근 불고기집에서 맥주 6병을 마신 후, 2차로 거성관에 갔다.
그러나 종업원들은 드레스 코드를 운운하며 옷차림이 엉망이라고 그의 출입을 저지(입뺀)하였다. 그는 수십만원의 현금을 보여주며 지금 옷차림이 엉망이지만 그래도 돈은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종업원은 쫓아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술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가 농부라서 무시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결국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산 후 클럽 뒷문으로 들어가 무대 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다음 도주했다.
범인이 불을 붙이려는 순간 무대에서 전자오르간을 연주하던 사람이 그것을 목격했고, 그 사람이 재빨리 불이 났다고 알려 사람들의 피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화재도 7분만에 무사히 진화되었지만 16명이라는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 이유를 보면 지금 봐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니, 처음 사람들이 탈출을 시작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당시 클럽 내의 전기시설이 모두 꺼져있는 상태였다. 그로 말미암아 어두운 지하에서 비상구를 찾지 못해, 혹은 환풍기로 화재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 원인은 후에 밝혀지는데, 화재 당시 종업원이 화재를 전기 누전에 의한 화재로 오인하고 전원을 모두 차단해 전기시설이 전부 꺼졌던 것이다. 나름 빨리 대처한다고 뭔가를 했는데 화재 원인이 달라서 대참사가 된 케이스. 거기에다 회관 바닥에 깔린 양탄자가 타면서 유독가스를 배출했고, 그것도 모자라 손님들을 대피시켜야 할 종업원들은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다 실패하자 전부 먼저 도망쳤다.
그리고 손님들은 불이 난 것을 무대연출로 생각해 가볍게 넘겼으며, 뒤늦게 대피하려 할 때에는 1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1개뿐인 출입문에 몰려 있어 크게 혼잡을 빚었고, 설상가상으로 조명이 모두 꺼진 상태여서 피해자가 크게 늘었다.
당시 클럽에 있었던 사람 150여명 가운데 16명이 사망했고 1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검찰은 김정수에게 현주건조물방화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우발적인 범행이고 종업원의 과실로 피해가 커진 경우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원을 차단한 종업원에게는 중과실치사상죄를 적용하여 금고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사처벌을 내렸다.
사실 김정수 본인도 우발적이었고. 자신도 누가 본 것을 보고 놀라 달아나서 적어도 불은 끌테니 큰 피해는 없겠구나...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잡히면서 16명이나 죽었다는 말에 그도 깜짝 놀랐고 당시 방송에서 고개숙이면서 피해자 여러분들에게 죄송하다면서 본인도 이렇게 크게 피해가 날줄 몰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이다.
지금도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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