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이란, 병원 등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직급 등의 서열에 따라 행해지는 각종 악폐습을 말한다. 즉 직장 내 괴롭힘, 똥군기의 일종이다.
상대적으로 남자 간호사들은 피해 사례가 적은 편인데, 우선 간호대학의 남학생 비율이 전국 평균 기준상으로 16%가 넘어간 지 오래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여초 직종인 관계로, 이 업계에서 높은 자리에 오른 남자 상급자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람 자체가 일반적으로 동성보다는 이성에게 훨씬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에 남자 간호사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덜 닦이며, 반대의 경우도 비슷하다. 또한 해당 직종 특성상 힘 쓰는 일을 해야 할 때도 많아 병원 입장에서는 체력이 좋은 남자 간호사들이 매우 소중하다.
'태움'의 어원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폐습 자체는 오히려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다. 그리고 이런 악습은 소위 똥군기, 갈굼, 예절교육, 군대놀이 등으로 부르지만 간호사 사회에서는 이를 태움(burning)이라는 은어로 부른다. 자기 아래의 간호사 등을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다.
태움은 간호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시작되나, 간호대 내에서의 태움은 병원에 취업하여 간호사 생활에서의 태움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 그래서 학교에서의 태움(혹은 닦임)은 병원에서의 더 강한 태움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라는 헛소리로 태움을 조장하는 학교도 몇몇 있다.
병원에서의 태움은 역시나 똥군기 심하기로 유명한 의사도 기겁하는 정도로 그야말로 사람을 잡는 수준으로 태운다. 거기다가 내리태움도 있다. 병원을 그만두는 많은 간호사들의 사직 사유도 가뜩이나 일도 힘든 판국에 추가적인 스트레스까지 주는 이 태움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번아웃 증후군 중에서도 순수하게 외부 요인이 직접적 원인이 된 경우를 모두 태움이라 볼 수 있다. 실제로 태움과 번아웃을 같이 연관시키는 기사가 다수 나와 있을 정도로, 번아웃과 태움은 상관 관계에 놓여 있다. 애초에 태움(Burning)과 번아웃(Burn out)이 같은 단어에서 비롯되었으니, 관계가 없는 게 더 이상한 거다.
특히 중환자실 같은 특수 파트는 일반인 출입이 어렵기 때문에 더 태운다. 중환자실 특유의 예민한 분위기부터 깔고 들어가는데, 간호사가 태운다고 들여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그 안은 말 그대로 헬게이트. 수술방도 비슷하다. 일반 병동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태우면 환자, 보호자, 간병인, 문병객 등 보는 눈이라도 많이 있고, 이들이 보다못해 컴플레인이라도 할 수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중환자실 일하다 그만둔 간호사도 꽤 있다. 남자 간호사들이 자신 있게 특수 파트 지원했다가 심한 태움에 치를 떨면서 나오는 게 비일비재하다. 중환자실이나 수술방은 극도의 통제구역이고, 케바케라고 하지만 완벽한 작은 사회를 구성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외래를 오가는 환자가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도 없고, 볼 일도 없으며, 심지어 환자 가족조차 출입이 제한되니까 말 다한 것이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당하는 사람만 괴로운 환경이 조성된다. 여자 간호사들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대개 신규 간호사 시절 심하게 태워진 간호사들이 자신의 후임이 들어오면 더 심하게 태우는 경우가 많다. 보통 같은 성별끼리 태우는 경우가 흔하지만, 여성이 훨씬 많은 관계로 여성 간호사들이 남성 간호사들을 태우기도 한다. 물론 남자 간호사는 아무래도 남자다 보니 너무 심하게 하면 보복 당할까 무서워 덜 갈구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태움은 존재하는 편.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남성 간호사는 생각보다 귀한 인재이기 때문에 괜히 태웠다가 그만두면 본인들만 손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평소에 약한 사람 앞에서 똥군기 부리는 인간 말종들은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 앞에선 벌벌 떠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 일반인들보다 더 벌벌 떤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들이 아무에게나 들이대는 성격파탄자나 양아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고참 앞에서는 철저히 인내와 사랑이 넘쳐나는 착한 후배로 변신한다. 즉 사람을 대할 때 철저하게 윗사람, 아랫사람을 구별해서 대한다.
실제 아랫사람에게 잔소리하고 갈구는 사람을 보면 "윗사람이니까" 아랫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판단하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며, 반면 윗사람에게는 태세 전환하여 자기가 갈굼당해도 순종적으로 변하는 등 철저히 갑을관계에 따라 태세전환이 벌어짐을 알 수 있다. 직장이라고 예외는 없고 특히 업무 특성상 군기가 필요하고 폐쇄된 조직일수록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혼나는 것은 잘 모르는 신입으로서 당연한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태움을 문제삼는 이유는 '업무 상의 잘못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갑과 을의 질서를 사회 통념보다 훨씬 지나친 강도로 강요한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선배가 후배보다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데 잘난 척을 하기 위해서 '올바르게 잘 진행되고 있는 업무'를 잘못되었다고 선언하면서 엉터리로 고치라고 하면 후배 입장에서는 정말 난감하다.
선배에게 인사하는 문제와 업무 현장의 집중도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원래 학교든 기업이든 어느 집단에서건 갈굼을 행하는 상급자들은 지배욕 충족이나 그냥 자기 기분 나빠서인 것을 업무를 못해서 갈군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또한 업무를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근거가 있는 질책이 전혀 아닌 경우도 흔하기 때문에 문제. 군대의 훈련 교관 및 조교들의 원리 원칙에 따른 강훈련이 똥군기와는 전혀 다른 것과 같다. 실제 사례로 키가 작은 단신인 신규 남자 간호사의 일처리가 미숙하자 나온 지적이 미숙한 일 처리에 대한 합리적인 질책이 아닌 "키가 작으니까 일 처리도 그따위냐?"였다. 이것은 모욕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경우의 문제는 상급자로 갈수록 견제가 되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숙련자들이 갖기 쉬운 오해가 '경력이 쌓이면 작은 실수를 행할 가능성이 희박해진다'는 것인데, 그건 해 왔던 일을 계속해서 똑같이 해오는 단순 노무 기능직에나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나날이 새로운 장비와 기술이 도입되는 의료계에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들지 않으면 순식간에 도태 당한다. 즉 숙련자도 배워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한편으론 이 '태움'의 원인에 대해 의료수가 문제도 작용한다는 분석이 있다. 국민건강보험 문서에 자세히 나와 있지만 병원들은 복잡한 의료수가 문제로 인해 경영이 항상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이를 명목으로 병원 측이 간호사 인력을 쉽게 확충하지 않고 과도한 노동 시간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강요하며, 그 과정에서 '태움'이 악화된다는 것.
이에 대해 현장의 간호사들은 '구조적 문제도 분명히 존재하나, 오랜 간호계의 병폐와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서 생겨난 높은 비율의 '소시오패스'들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분명 간호사들의 노동 환경 자체가 열악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태움을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태움은 의료수가 문제와 인력 부족에서만 기인한 일시적이고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사라져야 할 뿌리 깊은 적폐이다.
태움은 폭언, 왕따, 얼차려는 물론 뺨을 때리고 정강이를 차거나 차트로 머리를 찍는 경우도 있다. 신규 간호사는 만만해서 괴롭히고 경력직은 외부자라며 왕따시킨다. 지난 2005년과 2006년에는 전남대병원 간호사 2명이 태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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