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5.
유시민은 2003년 4월 치뤄진 1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고양 덕양 갑 지역구에 개혁국민정당(개혁당)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유시민은 무슨일이 있어도 새천년민주당(민주당)과 단일화나 공조하지 않겠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선언하여 개혁당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유시민의 이같은 발언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하기 위기 권영길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유시민 본인의 발언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유시민은 또다시 말을 바꾸어 민주당 측과 후보 단일화를 하게 된다. 이에 개혁당 내부에서 극심한 반발이 일어났고 결국 당이 분열되기에 이르렀다. 외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는데, 진보 언론인 오마이뉴스까지 유시민의 말바꾸기를 비판했다.
어쨌거나 유시민은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국회의원 선서를 하는 첫날부터 백바지에 라운드 티셔츠라는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복장으로 참석해 어마어마한 어그로를 끌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계 의원들 역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일이어서, 해당 복장을 받아들이지 못한 의원들이 대거 퇴장해버리면서 선서를 이튿날로 미루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튿날 일반적인 정장 차림으로 참석하여 정상적으로 선서를 함으로써 사태는 일단락되었으나, 이로 인해 그의 정치생활엔 싸가지 없는 좌파의 상징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백바지가 어때서?)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 25일까지 1년 3개월가량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임했다. 참고로 유시민은 독일 유학시절 보건경제학을 전공했다.
장관 임명 과정 자체도 매우 험난했다. 유시민이 입각하기 직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당시 정계의 화두 중 하나였던 상시 청문회법을 확대하여, 국무총리가 아닌 국무위원의 임명에도 인사청문회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이를 극렬히 반대했다. 결국 여야의 대립 속에서 표대결에 의해 한나라당이 발의한 개정 인사청문회법이 통과되어 공포되었다. 하필이면 백바지 사건 등으로 찍힐 대로 찍힌 유시민이 개정된 인사청문회법의 첫 적용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관 청문회를 앞두고 유시민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의혹들이 터져 나왔다. 특히 1999년 7월부터 2000년까지 국민연금을 1년 이상 미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기 위해 소득 신고를 누락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장관로서 부적격하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일었다. 유시민은 고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 유시민의 학력 위조 문제도 불거졌다. 그동안 유시민은 마인츠 대학교 경제학 박사라고 학위를 기재해 왔으나 실제로는 석사 학위만을 취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 유시민은 본인이 아니라 출판사 등에서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국회 정책개발비 유용 의혹도 제기되었다.
국회의원 선서 당시 백바지 사건의 여파를 만회하기 위해 청문회 때에는 깔끔한 정장에 머리도 올려 넘겼으나 청문회 첫날 얼굴에 과도하게 화장을 한 바람에 얼굴에 허옇게 뜨는 백탁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모습이 방송을 타고 전국으로 중계되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인사청문회라는 난관을 뚫기 위해 유시민은 직접 한나라당을 방문하여 박근혜 최고위원을 비롯한 여러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하는 등의 노력을 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장면은 YTN 돌발영상 레전드로 남아있기도 하다. 박근혜 최고 위원과의 면담. 결국 인사청문 적격 보고서는 채택되지 못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었다. 유시민은 적십자비 한 번 안 내서 절대 부적격 장관 취급당했다며 인사청문회 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정권이 바뀌어 야당이 되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태도가 정반대로 바뀌어 장관들이 청문회에서 한 번 강하게 털려 봐야 한다며 인사청문회를 옹호했다.
당시 유시민의 장관 임명에 대해선 유시민이 속한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극렬히 반대해서 이런 의견을 수렴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유시민을 장관으로 임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서, 임명을 강행하려는 노 대통령과 총리 사임을 운운하며 다투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장관으로 임명된 후에 여러 정책을 펼쳤고, 그만큼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