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은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하여 한국국적과 미국국적을 가진 복수국적자이다.
미국 이름은 John Linton. 종교는 개신교(장로교)다. 본관은 교동 인씨
연세대 의대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1959년 12월 8일 생으로 전주시에서 태어났고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2012년에 특별귀화 형식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특별귀화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의 경우, 한국내에서 외국 국적(에 수반되는 여러 권리 등)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할 경우 이중국적을 허용토록 한 규정에 따라, 본래 가지고 있던 미국 국적을 함께 보유 중이다. 강연에서 인요한 박사 본인이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은 22세 때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와 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아버지 휴 린튼은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 출생이고, 6.25 전쟁 때 참전하기도 하였다. 그와 함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선교활동을 이어받아왔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 2세지만 어머니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으로, 결혼을 통해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온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영어 교육 봉사 등으로 보냈다. 아들이 미국 국적을 버리고 한국으로 귀화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한국의 국적법 개정으로 한국과 미국 이중국적을 가지게 된 후로는 매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형인 인세반은 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3대째인 인요한 자신은 2012년에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하였고 4대째인 인대위 씨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았다.
이미 5대째인 손주도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내 고향은 전라도" 자신이 쓴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전라도에 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다. 그 중에서도 순천시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인데,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이지만 어렸을 때 성장한 전라남도 순천시를 자신의 뿌리로 삼고 있는 듯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나는 전라도 촌놈 인요한", "순천이 우주의 중심입니다" 등의 애향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어렸을 때부터 순천 억양의 전라도 사투리가 입에 붙어서 어학당 생활을 했을 때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매우 찐한 순천 사투리가 나와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향 말보다는 표준어를 쓰는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아들여 공식석상에서는 되도록 표준 억양을 구사하려고 하지만 편하게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고향말과 고향의 억양이 튀어나온다고.
2016년 6월 16일에는 고향 순천시의 순천만국가정원 명예 홍보대사 1호로 위촉되었다.
인요한이 예능에 출연한 일이 없어서 그럴 뿐이지, 만약 예능에 출연했다면 경상도에는 하일, 전라도에는 인요한이라는 구도가 나올 수도 있을 법했다.
특히 인요한 자신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하였다.
성향은 보수적인 편이지만 자신의 가족들이 하고 있는 유진 벨 재단의 영향과 전라도에 대한 애착과 5.18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했던 경험 때문인지 보수 매체에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지원, 5.18 폄훼가 있을 때는 자신은 의사이기에 대북 의료지원은 북한 어린이들이 걸리지 않는 병을 앓지 않고 살기 위해 계속해야 한다, 5.18을 북한의 사주나 개입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출연하여 적극 반박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