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역사상 대선 최다 득표자 심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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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역사상 대선 최다 득표자 심상정

심상정
진보정당 최초이자 단 둘뿐인 3선 의원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20대 국회의 고양시 갑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정의당 소속.

노심조의 심.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의 상징인 거물급 정치인이자 제19대 대통령 선거 본선의 유일한 여성 후보.

1959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서 아버지 심명택과 어머니 이명림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대조초등학교, 충암여자중학교, 명지여자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했다.



-고교 시절의 심상정-

노동운동가 시절

알쓸신잡 7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소회하기를, 심상정 학생은 대학시절 운동권에 참여하게 되면서 지도부에 들어가기를 바랬으나, 당시 시대상 여성이 어떤 조직의 주축이 되는 것은 운동권에서 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에 화가 잔뜩 난 심상정은 아예 운동권을 돌아다니면서 "옥바라지만 시킬거면 내가 데려간다. 남자들 틈에 치여서 크지도 못한다. 내가 키운다"며 여자들을 죄다 모아서 여자들로만 구성된 서클을 만들었고, 이 후 다시 지도부에 들어가기를 신청했으나 그럼에도 거절당했다는 모양. 이 때 만든 여성 서클을 데리고 구로지역 노동조합 연대투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1980년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하며 노동운동계의 스타가 된 후, 1985년 '서울노동운동연합'의 창립에 참가하였으며 1986년 인천 5.3 운동으로 김문수가 체포되자 그 뒤를 이어 서노련 지도위원이 되었다. 서울노동운동연합의 해산 후 수배생활을 해오다 1988년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의 결성에 조력했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창립되자 쟁의국장과 조직국장을 역임하며 노동운동가로서 입지와 기반을 확고히 했다.

-수배시절의 심상정-


1993년 11월 23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집행유예가 종료된 1995년부터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민주금속연맹'과 '금속산업연맹'의 무처장을 역임하며 전국금속노동조합의 기반을 닦았다. 2001년, 구로동맹파업이 민주화 운동으로 분류되어, 수배경력이 말소되었고 금속노조가 정식으로 설립되자 다시금 사무처장을 역임, 노동운동을 계속했으며 2003년 사무처장에서 물러나, 2004년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의 자리에 오른다. 


2003년 4월 17일 일반교통방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벌금 1백만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대한 내용은 본인도 언급하지 않았고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아 구체적인 경위를 알 수 없다.

정계 입문

17대 국회의원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후, 여러 활약이 있었으나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 한미 FTA 반대에 적극 나서면서 벌인 논쟁들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 노회찬과 경쟁하여 권영길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여 2%차이로 석패. 이후 17대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격랑에 휩싸이면서,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된다.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의 출당 등을 건 혁신안이 결국 당내 NL계의 반발로 부결되자 비대위원장을 사퇴하고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노회찬, 조승수 등과 진보신당을 창당하여 총선에 출마하였으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손범규 후보에게 근소한 차이로 밀려서 낙선, 재선에 실패했다.

국회의원 낙선 후 다시 노동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 예상되었으나, 2008년 촛불집회에 참가하여 광우병에 대한 위험성을 강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운동을 벌였다.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의 경기도 지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국민참여당후보 유시민 지지를 선언하고 마지막에 사퇴한다. 이를 계기로 진보신당 내부는 격론이 벌어진다. 이후 진보대통합 과정을 거쳐 2012년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고양시 덕양구 갑 국회의원에 매우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어 4년만에 국회에 재입성하였다. 당시 개표가 99% 완료된 상황에서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에게 근소하게 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패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투표함인 재외국민 투표함에서 심상정에게 몰표가 나와 극적으로 역전하였다.

진보정의당 창당

2012년, 5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통합진보당이 내외적인 갈등과 부정 경선 사태로 탈당, 진보정의당 창당에 힘을 보탠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 후보로 10월 14일 출마를 선언하고 예비 후보자로 등록한다. 그러나 결국 11월 26일 야권 단일화를 위해 당시 안철수 후보의 양보를 받은 민주통합당 문재인후보를 지지하고 후보 등록을 포기한다.

이후 정의당의 원내대표로서 활동하다가, 2015년 6월 8일자로서 원내대표의 임기를 마치고 당대표 선거에 참여, 1차 선거 때는 노회찬 후보와 큰 차이로 2등을 득표했지만, 결선에서는 노회찬 후보를 앞서서 당선하여 당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2년 임기의 정의당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일방적인 노동개혁 강행을 골자로 한 기자회견을 하고 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2015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심상정 의원이 폭풍 사자후를 토해내어 화제가 되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중요한 건 대선에 앞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살아남는다면 진보정당 최초 3선 의원이 되지만,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과의 대결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2016년 2월 5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8% 정도 앞서고 있었다. 만약 야권 연대가 무산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들과도 대결해야 되므로 더욱 힘든 싸움이 예상되었다. 

2016년 2월 23일부터 시작된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국면에서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당연하고 마땅한 결정이라고 발언하였다. 당의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어 필리버스터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필리버스터에 참여한 의원을 격려하거나 새누리당 의원들의 방해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필리버스터 마지막 날인 3월 2일 정의당 마지막 주자로서 필리버스터 연설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박원석 의원 발언을 방해하는 조원진 의원에 맞서는 심상정 의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박준 후보와 단일화가 무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과반수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하며 새누리당 손범규 후보를 16%p 이상 따돌리고 압승을 거두며, 이날 승리한 같은 당의 노회찬 의원과 함께 한국 진보정당 최초의 3선 중진 의원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심지역에서는 그야말로 심상정에게 거의 몰표가 쏟아진 수준이었고, 기존 19대 총선에서 손범규 후보가 우세했던 농촌 지역들 중에서조차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는 신승하긴 하지만 모두 이겼다. 그 기반에는 꾸준한 지역 의정활동과 농촌 지역 개발이 주요 요인으로 뽑힌다. 탄탄한 지역기반을 보여줌으로써 의정활동에서 큰 흠이 없는 한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진보정치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던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인사였으나, 주요 진보 인사들이 여러 사건들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정치권에서 은퇴하거나 물러난 사이 국민들의 공감을 얻을 만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한 결과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선 노회찬과 함께 진보정당의 독보적인 중량급 인사로 성장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대표로서 정의당의 2016년 20대 총선 승리를 견인했어야 하는데, 단 6석만을 획득하는 데 그치며 전체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게 한계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20대 총선이 지난 19대 총선과는 달리 비례대표가 7석 축소된 데다, 국민의당과의 단일화는 물론 더민주와의 단일화마저 실패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의당 자체의 지지기반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20대 국회 활동

정무위원회에 배정되었다.

2016.06.18 성과 연봉제를 두고 박근혜 정부야말로 저성과자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2016.06.23 영남권 신공항 처리에 대해서는 박근혜 정부가 잘한 일이라 칭찬했다.

2016.06.28 CEO 등의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30배 이상을 넘지 못하게 하는 일명 '살찐 고양이 법'을 발의했다.

2017.03.04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을 제정했다.

심 대표가 19대 및 20대 총선에서 제압한 새누리당 손범규 전 의원은 헌재 심판에서 박근혜의 변호인으로 선임되었다.



정계 평가와 비판

대표적인 진보정치인으로서 약자의 권익을 위해 열심히 싸워왔지만, 소통은 미흡하다는 게 중론. 그래도 다른 정당이나 같은 당내의 중진급 인물들에 비해서 소통력이 좋은 편이라는 말을 들었었다. '당명을 정할 때 투표하는 정당이 어디 있단 말이냐'는 발언이 있다.

하지만 메갈리아 사태 때 노회찬 원내대표를 제외한 당내의 중진들과 단체로 귀막고 자기 할 말만 하는 식의 덮어가기 언행을 보인 탓에 엄청난 비판을 받아서 이것도 옛말이 되었다. 물론 후에 사과를 하긴 했지만 후술하는 것처럼 진정한 의미의 사과는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이나 당내 일부 참여계를 제대로 자극했던, '야당에는 친노 vs 비노가 싸우지만 정의당엔 친국민뿐이다!'라며 전형적인 양비론 문구를 써 붙였던 현수막 건이나 당원 게시판 무더기 징계 건에서 대처도 매우 늦었고, 특히 무더기 징계 건에서 면담 요청에 응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임자였던 천호선 대표 시절에는 당직자를 공채로 뽑았지만 심상정 대표 체제에 들어와서는 그런 거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개선 노력은 안드로메다로... 결국 당직자의 자질 논란이 불거졌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호통 사건이나, 살찐고양이법 발의 등으로 언론의 주목을 유도하는 스타성이나 주목을 유도하는 실력은 뛰어나다는 평가. 물론 살찐고양이법은 법안의 통과가 쉽지 않다는 것은 본인부터 잘 알고 있겠지만 시민들의 이목을 끌어 모으고 의식을 환기시키는 데는 성과가 있었다. 또한 자신의 선거구지역 활동에도 성실히 참여해 진보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지지 기반을 안정화 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다.


생각에 따라 옳고 그름이 갈릴 수 있는 개고기 식용 문제에 대해 당대표 직함으로 반대 집회에 참석했으면서 정작 당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의견을 내놓으면서 소통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담으로 성격이 그런 면이 있는 데다, 이명박 前 대통령과 이목구비가 닮은 면이 있어서 일각에서는 여자 이명박이라는 얘기도 듣고 있다.

2016년 8월 16일,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담고있는 한미연합 훈련을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하여 논란이 되었다. 내부 내용을 자세히 몰랐다고 변명하였지만, 내부 내용을 모르고 국회의원 서명을 해준다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문재인을 찍을 바에는 유승민을 찍어라"라는 식의 발언도 논란이 되고 있다.

2017년 5.18 추모 행사에서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선거 유세나 영화제가 아닌, 추모 행사인데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었다는 주장. 하지만 당일 5.18 추모식 입장 영상을 보면 정세균 국회의장을 비롯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모두 손을 흔들며 입장하는 모습이 확인된다.

2017년 9월 중순에 생리대 유해물질 파동관련으로 생리대에 대한 1차 성분검사가 가까워지자 이낙연 총리에게 다시 검사를 부탁한다는 트위터를 올렸다가 물타기를 하는거냔 비난을 들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문예위의 월권행위에 대해 당대표로서 신속히 조치를 하지 못한 점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 팬클럽 창단식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질문을 의식했는지 현장 질문을 받지 않고 사전선정된 질문만 받으면서 비난여론이 일었다.

사건발생 후 9일이 지나서야 겨우 당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으나...만연체로 길게 늘여쓰기만 하고 별 핵심은 없는 내용을 쓴 데다가, 사건의 핵심논점이라고 볼 수 있는 메갈리아에 대한 입장 및 문예위 간부들 처우 문제에 대해선 대단히 애매모호한 말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서 심상정 대표의 결단을 원했던 상당수의 지지자 및 당원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좌파 박근혜라고 불리면서 심근혜라고 까이기도 했다. 
그러나 위의 애매모호한 표현들과는 달리 당 전국위원회에서는 심상정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고인드립 등은 반대하지만, 혐오가 약자의 투쟁 수단일 수 있기에 혐오를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하며 부분적으로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옹호했다. 그 뒤로 큰 일은 없었으나 여전히 메갈리아와 관련된 문제가 당 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며 정의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렇게 입장이 불명확한 점은 지지기반을 무너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확실한 입장 표명이 필요해 보인다. 대선 출마까지 선언한 상황에서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간다면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지지 기반이 붕괴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당원들도 대량으로 빠져나가고 지지율도 추락하는 상황 속에서 때마침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파급력으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참으로 총체적 난국인 상황. 더군다나 메갈리아-워마드에게 점령당했다고 비난 받는 진보계열 정당인 노동당과 녹색당이라는 예시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한다는 의견이 대다수를 차지하고있다.

17년 2월 10일, 정의당 의견그룹 "진보너머"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최소한 상황파악 정도는 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 의하면 자신의 아들과 해당 사건에 대하여 수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봤다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도 당시 사태에 대한 이해부족과 대처미흡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를 보고 반성하는 모습에 있어 진정성을 느꼈다고 평하는 일부 지지자도 있지만, 위의 인터뷰와 심상정 대표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등을 돌린 지지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해당 사건에 대하여 후회만 하고 있다는 주장일 뿐이다. 문예위 논평 사건으로 벌어진 당의 혼란과 분열을 어떻게 수습할 건지에 대해서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은 덤. 이러다보니 이미 비토세력이 된 이들에겐 어필은 커녕 더욱 욕만 먹고 있다. 암만 후회한다고 본인이 말해봐야 당시 사건처럼 개인이 아닌 당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발언하여 수습할 필요성이 있는데, 고작 개인 인터뷰에서 후회는 하고 있으나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의 얘기만 하고 넘어가려 하니 설득력이 있을 리가. 그래서 아낌없이 온갖 지원을 해주던 지지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쳐놓고 인터뷰 하나로 퉁 치고 넘어가려는 거냐며 커뮤니티의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이런 심상정 대표의 무책임한 행동의 여파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1월부터 모으기 시작한 정의당 대선펀드의 결과다. 메갈리아 사건 이전만 해도 하루 만에 모금액을 10억 원이나 채우는 기염을 토했지만 사건이 터지고 난 지금은 원래 목표인 10억원의 1/4 정도인 2억 5천만 원만 모금되고 끝나버렸다. 당 내부에서도 사건 당시 메갈리아와 트페미 측에서 심상정 대표를 옹호하고 대깨심(대가리가 깨져도 심상정)을 외치며 몰려들었지만, 이후에는 그 세력이 정의당, 심상정에게 그렇게 의미있는 지지층이 아니라는 것이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따져봐도 표와 돈 등 물심양면으로 정의당을 풍부하게 지원해주었던 기존 지지자들에 비해 이들이 도움은 커녕 오히려 방해만 된다는 당원들의 지적도 나온다. 한 마디로 어느 쪽에서든 분명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박쥐 신세가 된 셈. 당내에서 계속 거론되는 자금 문제도 그렇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매우 많이 쌓인 상태인데 심상정 측에서는 이를 수습하려는 기미를 보이긴커녕 대선 출마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정의당 측은 숨통이 조여들대로 조여진 상황이다.

여담

운동권에 발을 들인 계기는 입학 후 연애 좀 하려고 하니 괜찮은 남자애들이 거기에 많아서라고. 배우자도 운동권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알쓸신잡 7회에서 유시민이 생각하길 원래 그냥 운동권이라고.

현재 심상정의 거주지는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삼송지구)이다.

SNS에 심블리를 밀고 있는 것 같다. 노회찬 의원과는 다르게 유머 감각이 좀 떨어지지만, 보좌진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종친이며 사석에서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심재철은 친이계열이다.

PD 계열의 대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을 중요시하는 성격이다.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듯, 지역구의 기초 의원들은 모두 정의당에서 석권하고 있고 이들은 당 내외에서 심상정의 행보를 지원하고 있다. 다른 지역구에서는 국회의원은커녕, 기초의원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정의당의 현실에 비하면 이례적인 모습. 반대로 노회찬과 조승수는 조직과는 담을 쌓고 개인기로 승부하는 타입이다. PD의 특징이라고 하지만 사람 안 키우는 행보가 두 정치인, 특히 NL과 척을 진 조승수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무조건 대화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가는 바람에 '8대2'라는 별명이 있다고 전해진다. 본인도 알지만 잘 안 고쳐진다고.

원래 같은 당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정의당으로 남아있는 유시민과도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 서울대학교 동문이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던 사이였던 데다 통합진보당 시절 당권파와 대립하며 정의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PD계열의 얼굴 마담인 심상정과 참여계의 유시민이 교류를 안 할 수가 없었는 데다 정의당 창당 이후 정의당 입장에서 홍보수단인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20대 총선에서 정도로 매우 도움이 됐던 만큼 당대표였던 심상정이 유시민과의 친분이 유지됐을 것이다. 썰전(2017년 3월 9일 방송)에 출연한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티격태격대며 알고 지낸 사이라 서로 허물없는 친한 사이이며, 심상정 의원이 유시민 작가의 여동생이나 아내와도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날 유시민 작가는 드물게도, 앞서 나온 대선주자들을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치 외적인 부분에서 디스를 걸거나 중간중간 말을 놓는 모습도 보였다.


이명박 前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직후, 먼저 찾아와서 심상정에게 직접 인사했다. 더구나 이명박의 옛 이름이 이상정이었다고. 거기다가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을 창당했을 때랑 진보신당 창당 2년차 때, 이명박이 직접 축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현재 심상정의 지역구이자 심상정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는 고양 갑 선거구 지역은 원래 유시민이 2선으로 연임하고 있는 지역구였다. 유시민은 고양시 덕양구 화정1동 은빛마을에 살다가 2013년 정계은퇴 선언 후 성사동(원당)으로 이사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前 대통령이 자살한 이유가 차명 계좌 때문이 아닌가라고 발언한 경찰청장 조현오를 인사 청문회에서 만나서 꾸짖으면서 일갈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 심상정이 이명박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면서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 출마 예정 일정을 밝힌 후, 이명박을 4대강 관련 문제로 국정조사에 세우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자, 이명박이 엄청나게 투덜댔다고 한다. 그러자 심상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왜 임기 말 인기도가 가장 낮은 대통령 중 한 명이 됐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맞받아쳤다고.

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가 국회의장인 정세균을 만나서 의견을 전달하던 날에 왕복하는 도중, 심상정과 마주쳤는데, 심상정이 박근혜를 보고 면전에서 "퇴진하세요." 하고 대놓고 한 마디 했다고 한다. 근데 박근혜는 이런 말을 듣고도 웃으면서 지나갔던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