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교수이자 제11대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현재는 정년이 되어 은퇴하여 명예교수로 남아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 동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따고 교직에 들어왔는데, 특이하게도 박사학위가 없다.
박사학위가 없는 이유는 이태진 교수의 세대에서는 석사학위만 받고 교수 임용이 가능했고, 특정 분야에서는 학사 출신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학계에서 계속 연구 성과를 내놓는데, 박사 논문을 따로 쓰기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하는 것도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이당시는 한국 사학계의 태동기로, 교수진은 매우 많이 필요했지만 학위 소지자는 적은 상황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태진 교수와 동시기에 활동했던 역사학자의 경우 최승희, 최병헌, 김두진, 정만조 교수 등이 박사학위 없이 정년퇴임을 했다. 박사학위를 받기 시작하고 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정확히는 교수 채용시 박사학위가 필수가 되는(음악, 미술계 등은 제외) 경향은 보다 뒷세대에서 나타난다.
특정 시대를 전공한다기보다는 한국사 전체에 포괄적으로 관심이 넓은 편으로, 학술대회에 참여하거나 논문을 내는 것 역시 시대를 가리지 않고 내는 편이다. 하지만, 의욕은 앞서지만 자신의 주장이나 추론을 뒷받침할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해 부정적인 평가도 뒤따르고 있다. 정년퇴임 직전까지는 대표적으로 광무개혁재평가나, 소빙하기 등의 조선사 관련 학설을 제기하였으며, 근래에는 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에 대해 비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