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로 전국을 들썩이게 한 나훈아의 2020년 신보 ‘아홉 이야기’ 의 마지막 9번 곡은 ‘엄니’ 라는 곡이다. 그런데 이 곡에는 다소 특별한 사정이 하나 있다. 이는 나훈아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곡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곡은 2020년 신곡이 아니라 나훈아가 1987년에 작곡하였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청년들을 추모하고 이 청년들의 어머니들에게 곡을 바친다는 의미에서 제목도 ‘엄니’ 라고 지어진 것이다.
한 가지 더 의미심장한 사실은, 부산 초량 출신으로 걸걸한 영남 방언을 사용하는 부산 사나이 나훈아가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남 방언을 사용하여 작사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원에서는 억양을 모사한 흔적도 다수 보인다.
실제로 나훈아는 ‘엄니’ 를 작곡했을 때 호남에 거주하는 지인들에게 가사를 감수까지 받았다고 알려져 있으며, 5.18 희생자의 부모들에게 자비로 음원을 전달하기 위해 광주 MBC 와의 협업하에 약 2천여 개의 테잎을 준비하려 했었다.
그러나 87년 당시 전국적인 항쟁에도 불구하고 아직 군사 정권의 색채를 채 벗지 못한 정부는 나훈아의 작업을 이모저모로 방해했고, 결국 음원을 유족들에게 전달하려는 나훈아의 뜻은 무산된 채 33년이 흘렀던 것이다.
실제로 이 비하인드 스토리는 지난 2018년 나훈아의 광주 콘서트에서 나훈아 본인이 직접 언급한 바 있으며, 이번에 발매된 ‘아홉 이야기’ 에 첨부된 부클릿에도 적혀 있다.
한편 나훈아와 함께 가요계를 이끌던 남진은 전두환 정권의 호남 차별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미국에서 1980년대를 보내야 했다. 정권의 탄압은 영호남을 가리지 않았다.
가수로서 나훈아가 정녕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평생을 유지해 온 신비주의로는 상당히 유명했지만, 스스로의 메세지를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항상 신경쓰고 고민하던 예술가였다는 점은 사실상 잘 부각되지 않았다.
때문에 나훈아는 그 신비주의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대중예술가로 평가받아야 한다. 특히 모 재벌가의 개인적인 공연 요청을 거부하며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 티켓을 끊어라.” 라고 남겼다는 일화는 그의 예술관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거울과도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디어는 나훈아의 이러한 점을 제대로 평론하고 주목하기는커녕 개인적인 스캔들만을 추적하고 때로는 그의 신변에 관한 헛소문이 부풀려지도록 방치하곤 했다. 때문에 안타깝게도 나훈아의 대중적 이미지는 그리 좋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그 유명했던 ‘5분간’ 기자회견에서 나훈아는 일부 언론에서 자신과 관련된 헛소문에 아무렇게나 여성 배우들의(실제로 아무 관련이 없었던) 실명을 넌지시 흘리며 스캔들을 키우는 보도 행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나훈아를 대단한 트로트 가수 또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주인공으로는 대개 기억하지만, 그가 자비로 음악을 작사/작곡하여 우리 현대사 질곡 한복판의 희생자들을 위로하려 했던 사실들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그의 일련의 행위들은 단지 부산 사람 나훈아가 지역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자 한 것뿐만 아니라, 결국 그의 예술관과 예술 철학 자체가 철저히 대중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이 명백하게 재정의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결국 어제 콘서트의 선풍적인 인기는 비단 나훈아라는 사람의 음악뿐만아니라, 나훈아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그만의 따스한 시각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보아하니 일각에서는 어제 나훈아의 콘서트장에서의 발언을 두고 또 정치적 해석이 오가는데, 이쪽 해석이든 저쪽 해석이든 참 피곤하다는 생각뿐이다. 공연 티켓이 없으면 재벌가의 총수에게조차 노래를 들려주지 않겠다던 그가 티켓도 없이 전국민 앞에서 두 시간 반을 열창했는데 더 말이 필요가 있을까?
어제 콘서트에서는 비단 나이 든 세대 뿐만 아니라 청년층인 2030 까지도 열광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나훈아의 노래뿐만이 아니라, 나훈아 같은 ‘어른’ 이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